책과 바람난 여자
1) 빌린 책은 신성한 것이다. 그 책을 펼치는 것조차 이미 신성 모독처럼 느껴진다. 빌린 책을 가방에 넣고 방금 우체국에서 우편환을 찾은 기숙사 학생처럼 잔뜩 긴장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분실이나 절도는 자연재해보다 훨씬 심각한 불명예가 될 것이다. 2) 빌린 책은 대기중인 책들 가운데 묵혀두지 말고 단숨에 원샷으로 읽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겉표지를 싸줘야 한다. 새가 알을 품듯 품어야 한다. 그 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파리에서 정반대편에 있는 카페에라도 단숨에 달려갈 것이다. 혹시라도 책등에 금이라도 갈까 두려워 그 책은 한껏 펼치지도 못한다. 3) 그럼 왜 아예 새 책을 사지 않는 거지? 좋은 책이라면서?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있다가 한 번 더 읽고 싶다. 게다가 나는 그 책을 새로 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