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로그

Fly, Daddy, Fly

320x100


  
나에게는 특별히 바라는 게 없다. 정년퇴직 후에 낚시라도 하면서, 귀여운 손자들에 둘러싸여 평온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아내와 이탈리아 여행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내에게 로마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아내와 딸을 사랑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의 여정에서 아내와 딸의 존재만이 나의 자랑이며, 지켜야 할 보물이다. 가족조사란에 아내와 딸을 적어 넣을 때의 행복. 그 행복을 깨뜨리고 더럽히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  -p13

잠자리에 든 것이 자정.
자명종 시계가 울린 것이 여섯 시.
유코가 침대를 빠져나간 것이 여섯 시 3분.
내가 침대에게 빠져나온 것이 여섯 시 15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p43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지만,
언제나 같은 단조롭기만한 하루가 지루한 스즈키 하지메.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한결같던 일상의 바퀴를 흔들어 버리는 일이 생겼다.
무엇 하나 특별하다 생각되지 않는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아내와 딸.

딸에게 닥친 상황은 스즈키의 일상을 바꾸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제도와 공권력에 안주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그는 견딜 수 없다.
 

우연히 나는 그 특이한 애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우연이건 필연이건, 지금 나는 거기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낼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소중한 의미를.
문득, 그애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p74

복수를 위해 나선 스즈키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다섯 명의 고등학생을 만난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겠지. 애석하게도 말이야. 고작 자신의 반경 1미터 정도만 생각하고 태평하게 살다가 죽으면 행복할텐데 말이야." -p85

그들과의 만남은 그에게 있어서 삶의 전환점이 된다.
일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던 그가 틀 밖의 세상을 마주치고 만 것이다.


바나나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과육의 싱싱한 단맛을 혀끝으로 마음껏 느끼며 먹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볼을 쓰다듬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하늘이었다.
"정말 기분 좋아. 새로 태어난 기분이야." -p92

스즈키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동안 살아온 그의 인생과는 같지만 다른 어떤 것이다.


"우리는 시험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는 단 하나만의 이유로 쭉정이 취급을 당해요. 우리가 어떤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죠. 간단히 시험을 쳐서 그 결과로 인간을 분류하고 레테르를 붙이고 알기 쉽게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하려는 게 기분 나빠요." -p117


"왜 나를 위해 이런 고생을 하지?"
라는 스즈키의 말에 미나가타는 오기라 말한다. 시험 결과 만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현실 앞에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던 것이었다.
어째서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에 수긍하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잣대를 기준으로 "나"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화를 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해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부수지 않고 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야." -p109

한 가지를 고집하거나 거기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면 유연성을 잃게 돼. -p150

"자신의 힘을 과신하면 넘어지는 법이야. 그 앞에는 두 가지 패턴 밖에 없어. 무서워서 어떤 선을 그어두고 그 안에 머물든지, 포기하지 않고 한계 이상을 추구하든지."
"몇 번이라도 넘어져서 중력을 철저히 안 다음, 천천히 길들이면 돼. 그러면 하늘이라도 날 수 있어." -p157

폭력에는 정의도 없고 악도 없는 거야. 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p159

"자기 주변을 잘 둘러봐.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의 상상에서 나온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 그렇지만 이시하라와의 대결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저씨의 머리에서 만들어진 오리지널이야.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 이기고 지는 건 아무 문제가 아냐."

'높은 곳에는 타인의 힘으로 올라가서는 안 된다. 남의 등에 머리를 올려서는 안된다.' -p184



박순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쩜 저리 똑바른 소릴 골라서 할까?

그와의 훈련을 통해 스즈키는 새롭게 태어난다.
무대는 펼쳐져 있다. 선택은 그의 몫이다.


횃불처럼, 그대의 몸에서 불꽃이 튈 때
그대는 아는가, 내 몸을 태우며 자유가 된다는 것을
가진 것은 던져버려야 할 운명이란 것을
남은 것은 재와 폭풍처럼 심연으로 떨어질 혼미임을
영원한 승리의 새벽에 재의 바닥 깊이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남는다는 것을 -p226



[하나]

무술 실력이 뛰어난 재일한국인 박순신
냉철한 기획력의 미나가타
오키나와 출신의 이다라시키
홋카이도 출신의 가야노
넘어지고 동물한테 미움받기 일쑤인 어리버리한 야마시타까지.

스즈키가 만난 다섯명의 고등학생은 모두들 특이하다.
이름에서 가져오는 느낌과 함께,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는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시도때도 없이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는 야마시타의 모습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둘]

손을 내미는 딸에게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마는 스즈키.
히라사와와 야베, 그리고 이시하라가 만들어 놓은 각본에 굴복하는 그의 모습에
'책의 처음에서 <보물>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비열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조로운 일상 속에 갑자기 찾아온 폭풍를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제도 속에 안주하려는 스즈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바깥 쪽에는 무엇이 있을지조차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셋]

"요놈, 말하는 버릇 좀 봐라?"
박순신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순신의 모습은 뭐랄까, <건방진 애어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귀여운 느낌이 드는 건 그가 <심지는 바른> 사람이라고 믿게되는 구석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굳건한 느낌의 순신의 모습은 그의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한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이런 것일까?


[넷]

날개를 달고서 날아오르는 모습이 흐뭇했다.
'자기 전에 조금만 봐야지.' 하고 펼쳤는데 노력하는 스즈키의 모습을 보니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늦은 새벽에야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영화 <플라이대디>가 궁금해졌다. 개봉하면 보러가야지♪


[다섯]

책의 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들어야지! 하는 것이 처음 페이퍼를 발행할 때 생각했던 것이라서 가능하면 책을 전부 보여드리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그것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책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알려드린 것 같으면 흘려보아주셔도 괜찮습니다 :)
즐거운 책읽기에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요.

Fly, Daddy, Fly / 가네시로 가즈키

반응형

'Luvin'it >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나 우는 소녀  (0) 2006.08.26
모모  (0) 2006.06.29
일요일들  (0) 2006.05.10

블로그의 정보

시소의 취미생활

SEESOSSI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