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로그

웨하스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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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이 없는 어린애였는데, 그것은 나 자신을 마치 홍찻잔에 곁들여진 각설탕처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분은 어른 옆에 있을 때만 느끼는 것이었지만,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어른 옆에서 지냈고, 어린애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어른과 함께 있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홍차에 곁들여진 각설탕으로 지내는 편이 성격에 맞았기 때문이리라. 별 쓸모없는, 그러나 누구나 거기에 있기를 바라는 각설탕인 편이.  -13p

+ "죽는 건 슬픈 일이 아니야."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애인은 죽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죽지마, 라고.  -42p

+ 몇 번의 죽음. 나와 동생을 둘러싼, 갑작스럽고, 친근하고, 그리고 위엄있는.
나와 동생은 죽음은 평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를 맞으러 와줄 베이비 시터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신의 철모르는 갓난아기인 것이다.  -44p

+ 남자들,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색다른 과일처럼 독특했다. 다만,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멀고 애매해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54p

+ 선생님은 내게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고 했다. 쓸데없는 걱정. 그리고 하면 할 수 있다고, 거듭 거듭 말했다.
하면 할 수 있다니까.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고 싶은 것인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실제로도 느림보였으리라. 나는 무슨 일이든 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순종하는 어린애였기에, 온 힘을 다해 하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결심하기 위한.
몇몇 기억. 불행하지는 않았어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던 그 한없는 시간.
왜일까. 나는 어른인데, 때로 어린애의 시간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85p



친구를 앞서보낸 슬픔에 빠져있던 즈음, 집어 든 책에는 죽음에 대한 글귀가 유난히 자주 보였다.
기분 탓이었을까..

죽는 건 슬픈 일이 아니야.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세상에 없던 슬픈 일을 목격이나 한 것처럼 소리없이 울었다.
그리고는 죽음이란 것에 대해 조금 담담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정말 언젠가 우리를 맞으러 올 베이비 시터 같은 것일까?
정말 그렇게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다른 누군가가 슬퍼할까?
이런 생각에 얼마동안 우울해지기도 했다.

-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타인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며, 가끔은 그 자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웨하스의자의 경우.
나는 가끔 주인공인 그녀 같았다.
웨하스의자를 읽다보면, 내가 어느 순간 생각했던 것들이 책 속에 있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고, 가끔은 홍찻잔에 곁들여진 각설탕이고 싶었다.
아직 어른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린애도 아닌 나는 때로 어린애의 시간에 갇혀있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나의 불안함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알아주길 바랐다.

-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어쩐지 상쾌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얹혀있는 듯한 느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웨하스 의자 | 에쿠니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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